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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성 인지 감수성의 사회적 함의

      ‘성 인지 감수성’은 사회적 성(gender) 개념이 형성되던 1994년 유엔 여성대회에서 ‘성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라는 용어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성 감수성은 여성의 사회적 차별을 폐지하고 여성 권리의 신장을 위하여 채택된 개념이지만, 성차별에 대하여 인지하는 능력이라기보다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삶 속에서 성이 어떤 기능을 수행하는지를 인식하는 과정이다. ‘성 감수성’은 우리나라에서 ‘성 인지 감수성’으로 의미가 확장되었고 성차별을 전제하는 개념으로 수용되면서 피해자의 관점을 대변하는 개념으로 해석되었으며, 주로 페미니즘이나 사법적 판단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성 감수성’이 유사 개념인 ‘성 관점’(gender perspective)에 통합되어 사회적 성차별을 감지하는 능력으로 해석된 결과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성 인지 감수성’은 형사적 법리 적용에 사용되었고 남녀 간의 대립과 갈등을 전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사법적 차원에서의 ‘성 인지 감수성’은 성범죄 사건에 대해 심리할 때 피해자의 입장을 해석하는 기준이다. 우리에게는 본래 의미의 감수성보다는 인지의 의미가 더 강화되었는데, ‘인지’라는 개념은 객관적 사실에 기초하기보다는 가치평가에 관한 개념이기 때문에 주관적 해석의 여지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성 인지 감수성‘은 양성평등 운동의 기초개념으로서 성정체성과 성차별에 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성별 간의 차이로 인한 일상생활 속에서의 성적 불균형과 차별을 인지하는 능력이며,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하여 인식하고 그 차이를 인지하면서 사회 안에서 형성된 성차별을 개선해 나가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는 꾸준히 양성평등의 정착을 위해 노력해왔고 가부장 제도의 상징인 호주제도를 폐지하는 등 어느 정도의 성과를 달성하였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비율, 임금 격차, 모성보호제도의 미흡,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고용률 격차, 관리자와 임원 비율, 직업 분야의 제한, 직업선택의 자유 제한, 승진 기회 부족 등 성차별 문화가 여전히 고착되어 있다.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의 성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와 성찰이 필요하다. 성인지 개념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법적인 차원을 넘어 진정한 양성평등의 의미에서 이성에 대한 존중과 배려의 개념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성을 가부장적 사회구조에서 이해하거나 성차별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은 이분법적 대립구조에 기초해 있다. 성차별을 전제로 한 성 담론은 대립과 갈등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이 정신과 육체의 통일체인 것처럼 남성과 여성은 한 인간을 이루는 상호보완적 주체이다. 성 인지 감수성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하는 이유는 우선 용어의 의미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성 인지 감수성은 성인지와 성 감수성이라는 두 개념이 복합된 단어다. ’인지‘는 이성과 사고의 영역이고 ’감수성‘은 감성의 영역이다. 인지는 심리적 차원에 속해 있고 감수성은 행동의 차원에 속해 있다. 인지와 감수성이 서로 분리될 수는 없지만 구체적인 서술이나 표현에 있어서는 성 인지 감수성을 성인지와 성 감수성으로 구분하여 사용할 필요가 있다.

 

      생리학적으로 호르몬의 분포를 보면 남성 안에 여성이 존재하고 여성 안에 남성이 존재한다는 것은 남녀가 상호보완적 관계에 있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남녀의 성별은 상대를 배제함을 통해서가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남녀의 성별은 음양의 원리처럼 대립이 아니라 상생의 관계이다. 인간성 회복은 남성성과 여성성의 회복을 위한 진정한 융합의 길이다. 더 나아가 인간성 회복은 남녀 간의 대립을 통한 사회적 분열을 사회적 합의로 이끄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은 서로 구별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에게서 자신의 정체성을 발견하는 존재다. 따라서 성 인지 감수성은 차이와 차별을 전제하는 개념이 아니라 오히려 동일성과 융합을 이루는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 남성과 여성은 동등한 성 공동체의 구성원이며 사회적 관계를 이루는 주체이다. 남성과 여성은 상호의존적이며 상대방을 향할 때 비로소 자기 자신을 향하게 된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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