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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속도문화와 다음 사회(next society)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Peter Drucker)는 세계대전 이후 인류가 이룩한 최고의 성과는 대한민국의 발전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대한민국을 최단기간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이룬 유일한 국가이며 미래 사회를 선도할 첫 번째 국가라고 강조하였다. 우리나라는 20세기 중후반까지 가장 빈곤한 국가에서 70년 만에 선진국의 반열에 참여하였다. 전쟁 이후부터 산업화를 이루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국이 200년, 미국이 120년, 일본이 80년에 이룬 산업화를 30년 만에 이루고 원조받던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변모하였다.

 

      문화학자 게르트 호프슈테트(Geert Hofstedt)는 세계문화를 비교하면서 문화의 유형을 ‘장기적 지향성’(long term orientation)과 ‘단기적 지향성’(short term orientation)으로 구분하였는데 한국 문화의 유형을 ‘장기적 지향성’으로 규정하였다. 그에 따르면 서구문화는 현재 중심적이고 한국 문화는 미래 중심적이다. 그는 한국인이 미래의 목표와 꿈을 위해 현실을 인내하며 현재의 불안과 불확실성을 피하려는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속도문화를 이루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태풍의 눈처럼 변화의 중심에 서 있어서 쉽게 느끼지 못하지만, 외국인들이 우리 문화에 접하면서 가장 먼저 발견하는 것은 속도와 역동성이다.

 

      속도문화는 기마민족인 우리의 타고난 기질이지만 1970년대의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통해 우리의 DNA로 정착되었다. 속도는 우리나라를 경제, 교육, 산업, 사회복지, 유통, 문화 등의 분야에 이르는 세계 공식 지표에서 우위에 올려놓았다. 신냉전 시대에 우리나라가 세계 방위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는 이유도 품질을 겸비한 속도이다. 정보 사회에서 기술혁신의 속도는 정보를 선점하여 변화에 적응하고 변화를 선도하는 경쟁력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5G 기술을 도입하였으며, 이것을 기반으로 데이터 서비스와 인공지능, 엔터테인먼트, 스마트 시티, 자율주행 자동차, 원격의료, 증강현실 분야에서 획기적 발전을 이룩하였다.

 

      속도는 힘에서 나온다. 우리의 속도문화에는 에너지와 역동성이 내재한다. 속도는 단순히 ‘빨리빨리’가 아니라 변화와 발전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적응력이며 세계화와 무한경쟁 시대를 위한 생존 수단이다. 하지만 속도가 언제나 발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속도에도 명암이 존재한다. 속도의 변화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수용하고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다. 이제 기술 발전의 속도는 인간의 제어 능력을 넘어섰고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을 대체하고 있다. 기술 변화의 속도에 그것의 제도적 적용이 뒤따르지 못하면 부작용은 필연적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비혼과 저출산, 그리고 고령화의 문제는 속도문화의 부작용이다.

 

      변화와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 보니 우리는 모르는 사이에 세계의 중심에 서고 있다. 보호무역 시대에서 식량과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속도가 포기할 수 없는 유일한 경쟁력이다. 기술혁신의 속도가 세계의 제조업과 문화산업을 선도하고 있다. 지금은 산업화 초기와는 달리 자본과 개인적 능력, 문화적 환경이 맞물려 속도의 변화가 증폭하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 사회변화의 속도에 의식의 변화와 제도의 변화가 따라주어야 한다. 우리가 미래를 향해 변화하는 속도만큼 고유한 전통문화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속도를 내기 전에 목표를 바라보면서 출발점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우리에게는 지속 가능한 속도와 함께 안전한 속도, 신뢰할만한 속도, 정직한 속도가 필요하다. 그리고 속도가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와 방향성을 제시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 그러면 피터 드러커가 예견한 것처럼 우리나라는 ‘다음사회’(next society)를 선도하는 주역이 될 것이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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