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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소비사회의 모순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을 소유적 유형과 존재적 유형으로 구분하였다. 그에 따르면 소유하기 위하여 존재하는 사람이 있고 존재하기 위하여 소유하는 사람이 있다. 소유형 인간은 가진 것에 의존하지만 존재형 인간은 삶에 의지한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존재를 소유에 예속시키고 심리적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다고 비판하였다. 그는 경제성장과 양극화의 모순을 소비문화에서 발견한다. 소비사회에서 우리는 모두 소비자이며 소비하는 것이 권리와 의무다. 규범은 우리를 강제하지만, 소비는 우리를 유혹하여 자발적인 노예로 만든다. 그동안의 경제성장은 사회 전체에 균등하게 분배되지 못하였고 부와 소비의 양극화를 가져왔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성장은 소수의 부를 증가시켰지만, 빈곤층에게는 사회적 지위와 자존감의 붕괴를 일으켰다. 소비사회에서는 소비가 미덕이고 행복의 조건이며, 가난은 비정상적이고 사회적 기준에 미달하는 상태이다. 가난은 성공과 행복을 차단하고 심리적, 사회적 불안을 생산하고 소비의 불평등은 더 많은 불평등을 양산한다. 소비는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부추기고 공동체적 삶을 파괴하며 사회의 연대성을 와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고착시킨다.

 

      소비는 시장의 수요만이 아니라 가치관의 표현이다. 소비에는 사용 가치만이 아니라 과시 가치와 선호 가치가 작용한다. 소비는 시장경제 이론만으로 평가하고 예측할 수 없다. 과시 소비와 충동 소비에서는 수요, 공급 이론이 무너지며 가격이 상승할수록 공급이 줄어들고 수요는 더욱 폭증한다. 프랑스 사회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는 소비행위를 특정한 상품에 대한 욕구가 아닌 차이에 대한 욕구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소비란 생존을 위해 상품을 사용하는 것을 넘어 상품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욕망이나 쾌락을 충족시키는 행위이다. 보들리야르는 소비가 이미지를 획득하려는 욕구의 표현이라고 강조한다. 소비행위는 기호와 과시를 통해 사회적 차이를 생산하고 타인과 나를 구분하려는 욕망을 충족시킨다.

 

      우리 시대는 외모지상주의 시대이며 보이지 않는 실체보다는 겉으로 드러난 이미지를 추구한다. 이미지가 실체를 압도하고 존재 자체보다 그것의 껍데기를 추구하는 시대이다. 소비사회는 이미지에 갇혀 있지만 실체 없는 이미지는 허구이다. 우리가 명품의 생산단가가 가격의 10%에 불과해도 구매에 열광하는 것은 명품의 사용 가치보다 그것의 이미지를 소비하기 때문이며 광고와 대중매체는 이미지를 확장한다. 소비사회에서 소비자는 특정한 대상이 아니라 타인을 통해서 매개되는 욕망을 소비하며 대상의 이미지를 실체로 착각한다. 소비는 상품을 사용하며 향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소유하고 과시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상품을 구매하여 자신을 타자와 구분하고 이것을 통해 타율적으로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인정받고 소비사회에 예속된다. 소비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실현하기보다 소비할 수 없는 사람은 부자유하며 불평등한 사회이다.

 

      세계 경제의 고도성장은 자본주의 구조를 산업자본주의에서 소비자본주의로 변화시켰다. 배금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소비지상주의를 강화하고 비인간화와 사회적 아노미를 이끈다. 소비시장은 소비를 미덕으로 부추기며 소비자를 도덕적으로 무감각하게 만든다. 경제구조는 유기체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경제주체로서 소비자의 행위는 다른 경제주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효과’(external effect)를 일으킨다. 우리 자신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손해를 유발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비는 일종의 도덕적 행위이며 소비사회는 소비자의 윤리를 요구한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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