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사고가 결합하고 기술이 연결되어 새로움이 창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중심에서 갈등과 대립을 겪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전 세계 각 분야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세계의 위기에 대해 설문 조사한 ’글로벌 리스크 2024‘에 따르면 기후변화 인공지능과 함께 사회적, 정치적 갈등이 대표적인 문제로 지목되었다. 팬데믹, 인공지능, 탈세계화, 기후 변화, 신냉전, 인플레이션과 같은 급속한 사회변화는 불안과 의혹을 증폭시키고 개인주의와 다원주의의 확산은 사회 모든 분야에서 양극화를 확산하였다. 국가도 가정도 개인 관계도 대립과 분열을 나타내고 있다. 진보와 보수,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의 갈등과 빈부갈등, 세대 갈등, 지역갈등이 고착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가운데 갈등 지수에서 선두권을 다투고 있다.
내로남불은 인간의 본능이다. 인간은 선과 악, 정의와 불의의 기준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속한 집단에는 긍정적 성향을 나타내고 외부적 집단에는 부정적 성향을 나타내기 때문에 공동체 안에서 갈등은 필연적이다. 최재천 교수는 ‘숙론’에서 갈등 사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느 쪽이 옳은가에서 무엇이 옳은가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상대의 약점을 지적하는 대화가 아니라 서로의 의견 차이의 원인을 찾으며 소통하는 대화가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나의 장점과 타인의 장점이 만나면 시너지가 일어난다. 그의 ’숙론‘은 헤겔의 변증법과 유사하다. 헤겔(Hegel)은 참된 인식을 찾아가는 이상적인 과정으로 헬레니즘의 대화법인 변증법을 채택하였다. 헬레니즘에서는 대화를 통하여 불확실한 것들을 제거하며 진리를 추구하였는데, 헤겔은 이 방법을 정반합의 원리로 발전시켰다. 헤겔의 변증법은 분열과 통일 사이의 이율배반을 해소하려는 것이 아니라 양자의 배타성을 폐기하고 발전적 융합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물은 상온에서 액체이다. 우리가 이것을 명제로 만든다면 원래 이해된 상태인 ‘정(These)’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0도 이하에서 물은 고체이다. 이것은 처음 명제의 오류를 드러내는 또 다른 명제인 ‘반(Antithese)’이다.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명제이지만 모두 타당하다. 두 명제를 종합하면 물은 온도에 따라 고체, 액체, 기체의 형태로 변화한다고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두 명제를 보완한 새로운 명제인 ‘합(Synthese)’이다. 합은 또다시 정이 되며 그 과정은 계속 반복되어 인식이 확장하며 사고와 현실이 발전한다. 헤겔에 따르면 역사의 과정도 대립과 갈등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거시적으로는 진보를 이루어간다.
헤겔의 변증법은 음양이론을 통해서도 설명될 수 있다. 주역의 음양이론에 따르면 만물의 현상에는 정과 반의 양면이 있다. 양이 차서 기울어 음이 되고, 음이 극에 달하면 다시 양이 되는 원리는 양 안에 음이 잠재되어 있고 음 안에 양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음양이론은 생성하고 변화하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며 진리를 향한 논리적 추론이다. 음양을 설명할 때 상반된 모습을 보이는 물과 불의 특성에 비유하지만 둘은 하나의 운동 에너지 곧, 기(氣)의 두 현상이다. 음과 양은 대립을 통해 통일하려는 에너지의 흐름이며 고무줄을 잡아당길 때 복원하려는 반작용이 시작되는 것처럼 갈등이 일어날 때 음양의 전환이 일어난다.
헤겔이 추구한 변증법적 융합은 상대를 흡수하는 통합이나 소통 없이 공존하는 병합이 아니라 서로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연합하는 상생의 길이다. 헤겔의 변증법에서 정(正)과 반(反)의 단순한 대립이 합(合)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정(正) 안에 내재하는 부정과 반(反) 안에 내재하는 부정이 만나면 소멸이 일어나고 정(正) 안에 내재하는 긍정과 반(反) 안에 내재하는 긍정이 만나면 승화가 일어나서 역사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우리 자신에도 부정적인 면이 있고 타인에게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우리가 자신의 긍정적인 면에 집착하며 타인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면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자신의 부정적 면을 반성하며 타인의 긍정적 면을 발견하려고 하면 우리는 갈등을 넘어 융합을 통한 승화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