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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성서에 나타나는 예수의 비유 가운데 이웃 사랑에 관한 예화를 입법화한 것이다. 이 비유는 강도 상해를 당한 유대인을 같은 유대인들은 지나쳐 버리지만 오히려 적대적 관계에 있는 사마리아인이 도움을 준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소극적으로 수용하는 국가에서는 응급환자에게 응급처치를 제공함을 통해 환자에게 발생하는 육체적, 재산상의 손해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면제하고 있으며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국가에서는 응급환자를 구호하지 않는 경우를 범법행위로 확대하여 적용하고 있다.

 

      법은 결과의 관점에서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구분하지만, 도덕은 동기의 관점에서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도 구분한다. 법에서는 범법행위로서 악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도덕에서 악을 행하지 않는 것과 선을 행하는 것을 구별한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도덕과 법의 경계선에 대한 문제와 관련되기에 찬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에서 논쟁이 되는 내용은 선을 실천하지 않는 양심의 영역을 범죄로 볼 수 있느냐의 주장과 이기주의가 팽배한 현실에서 도덕적 영역에도 법률적 제재가 필요하다는 의견의 대립이다. 결과적으로 생명이나 신체의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구조의 의무는 개인의 판단이나 도덕성 문제가 아닌 최소한의 법적 의무에 해당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한편, 법의 제정을 위해서는 구조나 신고의 의무를 법으로 규정하면 구체적 상황과 사례를 명시하기 어려운 문제가 남아있으며, 선한 마음으로 행동한 결과가 수혜자에게 더 큰 불이익을 초래하는 문제에 대한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다.

 

      대부분 유럽의 국가들은 적극적 의미에서의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이 제정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을 소극적 의미로 해석하여 ‘선의의 응급의료에 대한 면책’ 조항을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법이 제정된 이유는 선행이 불이익으로 돌아오는 사례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규정에 따르면 생명이 위급한 응급환자에게 응급의료 또는 응급처치를 제공함으로써 발생한 재산상 손해와 사상에 대하여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그 행위자는 민사책임과 상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지지 아니하며 사망에 대한 형사책임은 감면된다. 하지만 응급의료법의 내용에 있어서 ‘중대한 과실’이란 단서 조항이 주관적이며 해석이 모호하기에 갈등의 여지가 남아있다. 따라서 갈등이나 소송이 발생하는 경우 국가가 선행자를 보호할 의무도 명시해야 한다. 현재는 감염예방법에 따라 예방접종과 관련된 약품과 의료행위에 대해서만 국가가 피해보상을 책임지고 있는데 응급의료법도 여기에 포함해야 한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국제적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최근에는 중국도 응급의료의 차원에서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제정하였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 광동성 선전시는 선의로 타인을 도와주다가 문제가 생겼을 때, 행위자에게 중대한 잘못이 없다면 법적 책임을 지지 않도록 법안을 마련하고 수혜자의 위증에 대해서도 처벌하는 조항이 명시되었다. 법안은 선의로 도움을 주고도 억울하게 가해자로 몰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중대한 과실에 대해서는 수혜자가 입증해야 하며 선행자가 수혜자를 돕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정부로부터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생명을 구하기 위한 선한 행동이 법으로 보호받는 사회가 되어야 선한 사마리아인이 나타날 수 있다. 적극적 의미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법은 국민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하며 지속적인 논의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지만, 선행자를 보호하며 격려하는 제도는 우선 정착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여 의료 수요는 급증하고 의료 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선한 사마리아법의 개정과 확대가 시급하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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