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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노동의 미래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자신을 대상화하는 능력에 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대상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한다. 노동은 단지 생계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실현의 통로이다. 노동은 인간 자신을 비추는 거울과 같다. 인간은 노동을 통하여 자신의 사고와 의지를 표현하며 삶의 목표를 실현한다. 노동의 소외와 실업의 문제는 농경사회로부터 자본주의사회로의 전이를 통하여 발생하였으며 노동의 상품화는 상업자본주의 시대 이후 노동이 직업과 동일시되는 임금노동의 형태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생산물의 상품화되는 과정을 거치고 생산자의 소유가 아니라 상업자본가들에 의해 화폐와 교환되면서 진행되었다.

 

      우리는 노동의 자유가 보장되지만, 성과에 억압된 사회에 살고 있다. 우리는 자신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억제하고 희생함으로써 일과 관계 맺으며, 노동을 통하여 원하는 것과 우리가 해야 하는 것 사이의 괴리를 경험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노동은 단지 생존에 필요한 재화를 취득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일 뿐이며 임금의 크기가 노동의 가치를 결정하고 상품화한다. 산업사회는 노동을 노동력으로 축소하면서 인간과 노동의 분리는 심화하였다. 고용노동은 노동의 계획자와 실행자를 분리하고 실업과 노동의 상품화를 초래하였다. 또한 자급자족 생산에서 대량생산으로의 변화는 생산자와 소비자를 분리하고 인간 중심의 경제에서 자본 중심의 경제로의 전이가 일어났다. 결국 인간의 자유보다 자본의 자유가 우위를 점하고 노동은 자본에 종속하게 되었다.

 

      노동의 상품화는 성과주의와 학벌주의의 원인이다. 기술의 혁신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노동의 소외와 단절을 경험하게 되고, 소득 불평등을 넘어서 교육, 건강, 사회적 지위와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노동의 소외나 노동의 상실은 생계 수단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정체성의 혼란을 초래한다. 산업화와 정보화 시대를 지나 인공지능 사회는 노동의 기능과 영역에 급격한 변화를 가져왔다. 기술 격차에 따른 노동의 소외는 단지 일자리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사회적 역할을 축소하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있다. 그레고리 맨큐(Gregory Mankiw) 하버드대 교수는 인공지능 사회에서 신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만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으며,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경제적, 사회적으로 더 열악한 상황에 직면하고 양극화를 부추긴다고 강조한다.

 

      기술 혁신과 정보사회로의 전환은 고령화와 맞물려서 노동시장의 위기를 조장하고 있다. 고령화로 인한 소득 불안정, 인력 부족, 고령노동의 증가, 기술 격차는 노동 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요구한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주최한 세미나에서 OECD의 안젤리카 살비(Angelica Salvi) 자문관은 OECD 회원국의 생산가능인구가 향후 40년간 평균 11% 감소할 것으로 분석하고 한국은 2062년 노동력이 2022년 대비 약 50%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였다. 고령화는 고용과 임금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의료비용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저하하여 경제 성장은 둔화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정년 연장을 둘러싼 논의가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정년은 60세이고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63세이기에 노동자가 정년을 채워 퇴직해도 연금을 받으려면 3년을 기다려야 한다. 2033년에는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65세로 상향되어 소득 공백이 확대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년 연장과 재고용이 실현되어야 한다. 양극화가 심화하는 후기 자본주의와 인공지능의 시대에서 노동의 미래는 노동의 소외와 실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달려 있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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