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경제학에서 보면 인간은 이익을 얻는 것보다 손실을 회피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인센티브 제도보다 벌금 제도에 더 민감하다. 우리는 100만 원을 투자해서 50만 원의 이익을 얻는 기쁨보다 50만 원의 손실에 대한 실망을 더 크게 느낀다. 마트에서 쇼핑카트를 정리하고 분실을 막기 위해 100원짜리 동전을 사용하는 잠금장치를 만들었을 때, 누구나 100원의 손실을 회피하여 카트를 자율적으로 반납하였지만, 카트를 반납한 사람에게 100원의 보상금을 준다면 참여자가 적을 것이다.
손실을 회피하는 성향은 비교를 통한 상대적 만족에서도 나타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처럼, 경제적 인간은 절대적인 부보다 상대적인 부를 원한다. 소득의 증가에도 행복도가 상승하지 않는 이유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타인의 소득이 증가하면 소득의 심리적 준거 기준도 높아지고 자신의 소득 증가가 행복에 미치는 효과를 감소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상대적 박탈감을 피하려고 절대 소득보다 상대 소득을 추구한다. 자신의 소득이 5,000만 원인데 사회의 평균소득이 2,500만 원인 경우와 자신의 소득이 1억 원인데 사회의 평균소득이 2억 원이라면 둘 사이의 선택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소득이 아니라 휴가의 경우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나의 휴가는 열흘인데 직장인의 평균 휴가가 5일인 경우와 나의 휴가가 한 달인데 직장인의 평균 휴가가 두 달이라면 누구나 적은 휴가에도 만족할 것이다.
소득과 행복의 괴리는 ‘이스털린의 역설’과도 관계가 있다. 경제사학자 리처드 이스털린(Richard Easterlin)은 빈곤국과 부유한 국가,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국가 등 30개 국가의 행복도를 연구하면서 소득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행복도와 소득이 비례하지 않는다는 현상을 발견하였다. 평균소득이 1만 달러를 넘어서는 국가에서는 소득이 늘어나도 행복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오히려 소득보다 건강과 교육, 인권, 직업과 사회적 기회, 투명성 등이 삶의 만족도와 행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경제학자 아더 오쿤(Arthur Okun)은 경제 지표와 행복의 불일치를 지적하면서 ‘국민행복지수’를 제안하였다. ‘국민행복지수’는 소비자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을 합산하여 경제적 인간의 삶의 질을 나타내는 것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면 경제적 인간은 소득이 높고 부를 많이 축적할수록 행복해진다. 과거의 주류 경제학은 시장만능주의와 효율지상주의에 빠져서 경제 지표와 경제 현상만을 분석하고 경제적 인간의 삶을 간과하였다. 행복이 자본의 논리로 평가되면서 경제와 행복, 성과사회와 피로 사회의 괴리는 시작되었다. 경제학적 사고방식은 소득의 절대적 상승보다 평등한 분배가 더 우선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양극화를 확대하여 사회정의와 개인의 행복을 무너뜨렸다. 소득보다 중요한 것은 분배이며 양극화는 불평등한 분배의 결과이다. 경제와 행복의 괴리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이윤추구와 소비의 증대만이 아니라 공감, 신뢰와 같은 사회적 자본의 가치가 고려되어야 한다. 인간의 행복은 경제적 이익처럼 자본으로 환산될 수 없다. 소득은 행복의 필요 조건은 될 수 있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GDP를 근거로 ‘국가 행복지수’를 평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상품이 생산될 때, 가격과 이윤만이 아니라 작업장의 환경과 노동 여건까지 포함되어야 전체적인 행복지수가 드러난다.
뇌과학 측면에서 인간의 행복은 뇌에서 일어나는 쾌락의 화학작용이다. 인간은 쾌락에 대해 적응하도록 진화되었기 때문에 행복은 불행과 마찬가지로 지속되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희석된다. 따라서 가진 것과 가지고 싶은 것을 분별하고 사회적 비교보다 내가 가진 것을 발견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가진 것이 적어서만이 아니라 가지고 싶은 것이 많아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