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대결보다 비방뿐인 韓…계엄에 탄핵까지 불안 커져
정치 후진성에 경제만 몸살…잘나가는 기업은 제품에 집중
“새해에 희망을 품는 것은, 생생지락의 합리적 국민 저력 믿기 때문”
국가가 리더 수준을 못 따라가면 독재자가 출현하고, 리더가 국가 수준을 못 따라가면 대형 참사의 가능성이 커진다. 후자가 오늘날 한국을 지배하고 있다. 특검, 계엄, 줄탄핵으로 국민과 세계를 불안케 하는 한국 정치권은 21세기 선진 한국의 수준에 한참 뒤처진 1970~1980년대에 머물러 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생생지락(生生之樂·고되지만 평안히 하루를 이어갈 수 있는 행복)’인데, 우리 정치권은 자기 이익만 탐하는 ‘조커 리더’들이 장악하고 있다. 리더십 진화론자인 네덜란드의 밴 보이트 교수는 정치권의 탐욕 전쟁이 우두머리 자리를 놓고 생사의 혈투를 벌이는 침팬지들의 그것과 같다고 일갈했다. 우리 정치 리더들은 왜 침팬지에서 진화하지 못한 것일까?
우선 경쟁과 전쟁에 대한 착각 때문이다. 경쟁은 정해진 과업을 ‘누가 더 잘하는가’를 가리는 과정이다. 승부는 국민이 결정한다. 상대방을 공격해 과업 수행을 못 하도록 방해하며 승리하려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축구에서 좋은 전략을 써서 이기려 하기보다 상대방 골잡이를 부상 아웃시켜 승리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전쟁이다. 우리 정치 리더들은 상대방을 무너뜨려 가진 것을 빼앗는 전쟁을 경쟁으로 착각한다.
기업은 그렇게 경쟁하지 않는다. 기업은 자사 제품과 경쟁사 제품을 직접 공격하거나 비방하는 광고를 하지 않는다.
예컨대 코카콜라가 자사 제품을 광고하면서 구체적 근거 없이 펩시를 헐뜯는 광고는 할 수 없다. 펩시의 포뮬러에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것도 규칙에 어긋난다. 자사 상품이 얼마나 좋은지를 심판관인 소비자에게 호소할 따름이다. 승부는 소비자가 결정한다. 정치도 상대방의 흠집을 찾으려 하기보다 자기 정책의 우수성만을 국민에게 호소하게 하면 이 지긋지긋한 ‘정치 전쟁’이 누그러들지 않을까?
또 기업은 글로벌 평판을 중시한다. 기업의 심판관은 국내에만 있지 않다. 직구가 성행하고 투자자들이 국경을 넘나드는 오늘날, 글로벌 평판은 더욱 중요해졌다. 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은 국제 평판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쇠사슬에 묶여 평생 벽면에 비치는 그림자만 보고 사는 플라톤의 동굴 속 죄수들처럼, 우리 정치 리더들은 바깥세상에 눈감고 세계의 평판을 무시하며 산다. 지난 50년 동안 우리 기업은 피눈물 나는 노력으로 대한민국의 글로벌 ‘명성 자본(reputation capital)’을 쌓았는데, 정치 리더들이 이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고 있다.
기업은 매해 임직원을 평가해 진퇴를 결정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한번 당선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임기를 보장받는다. ‘국가를 위해서’, ‘국민이 원해서’라는 핑계로 자기 성질대로 내질러도 문책당하지 않는다. 이들이 질러놓은 일 대부분은, 공익보다는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다. 만약 기업에서 자기 이익을 위해서 내질렀다가는 파면되고 고발당한다. 연간 평가 부재의 폐해다.
정치 리더 후진성의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다. 데이비드 월드먼 애리조나주립대 교수가 뇌파 진단기(qEEG)를 사용해 연구한 결과(2011)에 따르면 뇌의 ‘우측 전두엽’이 일관성 있게 작동하는 리더는 비전 제시, 설득, 소통, 타협 같은 리더십 행동을 효과적으로 발휘하지만, 이곳에 미스매치가 발생한 리더는 자신의 환상에 사로잡혀 아집과 독단과 탐욕에 빠지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정치 리더들은 개인적 이익, 극단적 이념, 알코올 등에 중독돼 우측 전두엽이 무너져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치 리더 후진성은 ‘포스트 카리스마 신드롬’일 가능성도 있다. 카리스마 리더의 시대가 지나면 혼란이 온다는 연구 결과가 많다. ‘3김 카리스마 시대’ 이후 아류 리더들이 출현했지만, 시대 변화를 못 따라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미국 헌법의 효력이 발생한 1789년 이후 235년 동안 미국에서는 총 60회의 탄핵이 발의됐는데, 이 가운데 21건이 인용됐고 그중 8건만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대통령은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 그리고 2019년과 2021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하원에 의해 탄핵당했지만, 상원에 의해 모두 기각됐다. 우리는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29건의 탄핵이 발의됐다. 카리스마 시대 이후 대안을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는 증거다. 아류 리더들은 과거 대통령의 복고풍 카리스마를 흉내 내봤지만 전 세계에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고, 고도의 설득과 통찰과 소통 스킬을 갖춘 연성 리더의 출현은 아직 요원한 상태다.
정치권의 후진성은 경제 문제로 종결된다. 핵심 산업들이 중국에 추월당했다. 반도체, 2차전지, 디스플레이, 자동차, 선박 모두 중국이 앞선다. 세계는 인공지능(AI), 가상자산, 자율주행차, 로봇,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우주, 환경, 바이오 등이 빛의 속도로 뻗어 나가는데 우리 정치권은 입법 준비와 지원에서 한참 뒤처진다. 반도체지원법은 주 52시간 근로 항목에 발이 묶였다. 용인·평택 반도체 공장을 짓겠다고 선언한 게 언젠데 전력과 용수 공급이 문제란다. 참 한가하다.
그래도 새해에 희망을 품는 것은, 생생지락의 선진 한국을 떠받치고 있는 합리적 국민의 저력을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