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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가면 증후군

      분석심리학자 칼 융(Karl Jung)은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는 자아의 방어기제를 ‘페르소나’(persona)라고 설명하였다. ‘페르소나’의 라틴어 어원은 배우들이 무대에서 사용하는 가면을 의미한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에는 배우들이 공연할 때 큰 목소리가 나도록 구멍이 뚫린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불렀다. 페르소나는 사회적 환경에서 적응하고 상호작용하는 데 필요한 다양한 역할과 행동 양식이다. 자아는 인간 자신의 본질적 모습이지만 ‘페르소나’는 사회적으로 형성된 자아의 외부적 형식이다. 융은 ‘페르소나’를 자아를 보호하고 인간의 사회적 관계를 원활하게 만드는 중요한 수단으로 보았지만, ‘페르소나’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자아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온다고 경고하였다. 자아와 ‘페르소나’의 괴리가 커지면 자아가 억압되고 심리적 불안과 좌절을 일으킨다. 우리 사회에서 ‘페르소나’는 사회적 역할을 넘어서 자신이 만들어낸 허상을 실제 자신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심리적 문제로 발전하고 있다.

 

      요즘 강남의 거리에 성형외과보다 정신과가 더 많아지고 있다. 사람들이 외모의 결핍보다 마음의 결핍을 더 깊이 느끼며 외모를 고치는 것만으로는 마음의 공허가 채워지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의식하고 행동하며 사회가 원하는 모습과 타인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에 맞추어 살아가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다. 심리학적으로 ‘페르소나’가 강화하는 것은 비교를 통한 열등의식과 낮은 자존감의 표현이다. ‘페르소나’는 기본적으로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기 위한 자아의 방어기제로 작용하지만, 지나치게 ‘페르소나’에 의존하면 좌절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면 증후군’(Imposter Syndrome)에 빠질 수 있다. ‘가면 증후군’은 성공에 대한 강박으로 자기의 능력과 성취를 과소평가하고 은폐하는 심리상태를 의미한다. 노력의 과정보다 결과만을 중시하는 성과 사회와 비대면 사회에서의 관계의 단절과 외부적 격려의 약화는 ‘가면 증후군’을 확산하고 있다.

 

      ‘가면 증후군’의 반대 현상은 ‘페르소나’가 아니라 자아에 집착하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이다. ‘나르시시즘’은 ‘가면 증후군’처럼 왜곡된 자기 인식을 나타낸다. ‘가면 증후군’은 ‘페르소나’에 자아가 은폐되어 과소 평가된 자의식으로 나타나지만, ‘나르시시즘’은 연약한 자존감을 방어하기 위해서 과장된 자의식과 자기합리화로 나타난다. 나르시시스트는 과장된 이기적 성향으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 한편 ‘가면 증후군’을 가진 사람은 공감 능력은 나타내지만 자기의 능력을 경시하고 자아와 페르소나의 갈등을 경험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경시하고 단순히 운이나 상황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자신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에 대한 불안에 빠진다.

 

      개인을 지칭하는 단어인 ‘person’의 어원이 ‘페르소나’(persona)인 것은 인간은 자아를 실현하기보다 사회적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는 의미를 드러낸다. 인간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 역할 속에서 타인과 자신을 인식한다. 그런데 ‘페르소나’가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가리기 시작하면 자기의 능력에 대한 의심과 자신감 부족으로 이어질 수 있다. 칼 융은 인간의 삶이 자아와 ‘페르소나’의 균형을 이루고 진정한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자신을 과장하는 것이나 자신을 은폐하는 것은 자아 정체성의 상실을 가져온다. ‘가면 증후군’은 객관적인 현실이 아닌 주관적, 심리적 허구이다. ‘가면 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현실과 자신의 심리상태를 인정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위선 사회에서 도덕 사회로 나아가는 출발점이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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