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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CEF칼럼…조남숙] 혼자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조남숙 선생님은 현재 90세로 30년간 이대부속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가치중심의 국어교육’을 실천한 참교육자였다.

퇴직 후 1990년부터 지역사회교육운동의 주요 프로그램인 ‘글쓰기독서지도자 양성과정’을 시작해 전국적으로 수많은 학부모들을 독서전문가로 양성했으며 이들은 학교도서관운동의 초석이 되었다. 부군이신 도예가 김기철 선생님(93)과 곤지암 보원요에서 지내고 계신다.[편집자 주]

 

 

 

 

우리 내외는 감사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많이 하는 편이다. 남편은 자기가 세상을 떠나 몸을 해부할 기회가 있다면 자기 뼛속 곳곳에 ‘감사’란 단어가 꽉 차게 새겨져 있을 거라고 말한다. 나도 수시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하나의 사례로 끝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우선 나는 이 땅에 하나의 인간으로 태어나 90이 된 오늘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던 행운을 감사한다. 나와 인연 맺어진 부모 형제, 남편, 자식들, 거기서 파생된 손주들, 사위, 며느리, 일가친척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 친구, 선후배들, 그 외 사회에서 만난 우리나라 또는 외국의 친지들, 수없이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 배우고, 느끼고, 신세 지고 도움받고 깨우치며 지금 나의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이끌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다.

오랜 세월 살아오며 내 혼자 힘으로만 할 수 있었던 일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수많은 주변의 많은 분들과의 도움과 염려와 물심양면의 도움이 절대적인 역할을 해주셨던 것 같다. 때로는 보이지 않는 천지신명의 돌봐주심도 함께 하셨음을 믿게 된다.

또한 건강한 내 감각을 통해 체험한 수많은 이야기들로 나의 내면을 성장할 수 있게 돌봐주셨음을 감사한다.

헬렌 켈러의 ‘내가 사흘 동안만 눈을 뜰 수 있다면’이란 수필을 접하지 못했다면 앞을 못 보는 사람들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늘 바라보면서도 앞 못 보는 사람처럼 그냥 지나쳤을 거다. 세상의 아름답고 귀한 것들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이끌어준 헬렌 켈러 여사에게 감사한다. 그 외 수많은 책들을 통해 나의 닫힌 영혼과 모르던 세계를 일깨워준 독서의 힘, 좋은 책을 써서 간접 경험을 통해 삶을 풍부하게 이끌어준 훌륭한 작가들에게 감사한다. 피천득 선생의 ‘나의 사랑하는 생활’이란 수필에서 자잘한 일상 속의 기쁨을 다시 되새기며 교사 생활에서 많은 학생들과 공유할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내 인생에 무엇보다 감사했던 것은 대학 졸업 후 바로 이대부속 중고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하게 된 것이다. 이대부속 기관은 사대학장 김애마 선생님의 교육철학으로 우리나라 교육의 선구적인 역할을 한 기관이었다. 교사들에게 각자의 지향하는 교육철학과 방법을 학생들과 함께 창의적으로 실험할 수 있는 자유와 믿음을 주었다. 그래서 내가 국어교육에서 가치교육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글쓰기 독서지도가 인간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란 내 나름의 40년 실천사례를 담은 책을 엮어 이대부중고 50주년 기념식 날 출간해서 학교에 드릴 기회를 가졌다. 이화대학 울타리에서 학생들과 함께한 교사 생활 30년은 내 인생의 황금기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하고 기쁨이 가득한 감사한 시간이었다.

내 나이 55세가 되었을 무렵에 나는 내 인생의 터닝포인트의 시점이 온 것을 느꼈다. 갱년기여서인지 건강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시대적으로도 이대부속의 독립적이고 창의적인 교육 방법을 실천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리고 대학 졸업 후 30년 교사 생활에서 내 꿈을 맘껏 펼칠 수 있었던 학교를 떠나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었다.

정년퇴임은 아직도 10년 가까이 남았고, 그 당시엔 명예퇴직 같은 제도도 없었으니 학교 선생님들은 물론 주변에서도 의아해했다. 그래도 여러 가지에 묶여있는 생활에서 나 자신만을 위한 시간표와 하고 싶은 일들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1990년 55세에 사표를 냈다.

우선 당시 국립박물관 대학이란 곳에 등록하고 내 입맛대로 배우고 싶은 강좌를 신청했다. 30년 가까이 이런저런 강의도 듣고 국내외 답사도 다니며 젊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행복하고 기쁜 나날을 보낼 수 있었음을 감사한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모임이 계속될 수 없었다.

또한 퇴직하면서 1990년에 ‘지역사회교육서울협의회’가 결성되어 친구인 백명희 교수가 회장이 되면서 나를 지역사회교육협의회와 인연을 맺게 하였다. 그 후 학교 퇴직하며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진 교육자료들을 상자에 담아 봉고차에 실어 우리 집 창고에 두었던 것을 풀어내어 어머니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20년 가까이 전국을 다니며 강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좋은 이웃들을 많이 만났고, 강의 결과 10년 회고록도 만들어 협의회에 기증했다. 학생들 가르치던 학교생활을 떠나 지역사회교육에 참여할 기회를 갖고 전국으로 다니며 오랫동안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기회를 감사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교육협의회에서 활동하는 동안 현재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 상임이사로 있는 김주선 님의 도움이 큰 힘이 되었음을 거듭 감사한다. 나를 지역사회로 안내한 친구 백명희 교수에게 감사하며 그의 깊은 우정과 능력과 너무 일찍 우리 곁을 떠난 친구에 대한 아쉬움에 마음이 아프다.

또한 친구 김은산 교수와 한국니일학회(자율교육학회)에 참가하며 새로운 교육을 위한 30여 년 세월도 감사한다. 학교를 벗어나서도 교육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나의 삶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었다. 학교에서 가르친 수많은 제자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모습을 전해 올 때 그것은 또 하나의 선물이었고, 그들의 삶은 다시 새로운 교육의 재료가 되어 지역사회교육에서 활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세상은 서로서로 이어져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거 같다. 모든 것이 지나고 보니 오랜 세월 나를 이 길로 이끌어 주신 스승님들, 그리고 함께 걸어준 친구들과 제자들, 지역사회교육 현장의 친구들은 서로 배우고 서로 가르치며 내 인생을 더욱 풍요롭고 따뜻하게 만들어 준 선물이었음을 깨닫는 시간이다.

조남숙 / KCEF 자문위원, 전 이대부속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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