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사람들은 누군가 이끌어내 줄 필요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스스로 말문을 열고자 하지 않는다.
1:1 또는 소 그룹, 두 세 사람일 경우는 아무래도 덜하긴 하겠지만
그룹이 클 때는 그냥 섬이 되고 만다.
일단 그에게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말이 없다고 해서 아무 생각이 없는 건 아니라는,
오히려 더 풍부할 수도 있다는 태도로,
그가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할 듯.
그가 어느 분야에 그라운딩 되어 있는지 파악, 그것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면 어떨까.
지금 이야기 되고 있는 주제에 관심이 있는지 확인해 보는 것도.
주로 듣고 있는 걸 선호하겠지만 누군가 진정으로 내 의견을 듣고자 한다면 내심 꽤 반가울 것이다. 좀 버버거리고 유창하지 못한 것을 충분히 수용해줄 것 같은 대상을 만난다면 아마 속으로 환호를 지르지 않을까. 음.. 사실은 이것은 내 이야기. 나도 한 수줍음 했었기에.
그림을 보니, 두 가지 경우가 보인다.
수줍어하는 사람과 더 수줍어 하는 사람, 아무 연결이 없어 보인다.
이들은 같은 장소에 그저 놓여 있을 뿐인 테이블과 문손잡이 같이.
아무 변화도 성장도 즐거움도 없이. 그것을 만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수줍지 않은 사람과 수줍은 사람, 여기서도 연결은커녕, 한 쪽이 답답해 하는 상태인 듯.
그러니 수줍지 않은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간간히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며, 답이 없더라도 전혀 조급하지 않게 기다려주고, 마치 그에게서 좋은 이야기를 들은 듯한 기분을 유지하며 그를 감싸주는 마음을 지니도록 해보는 건 어떨까. 이웃은 ’또 다른 나‘이므로 친절하고 너그럽게.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사실 누군가가 이끌어주어야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면 그 시간의 책임을 모두 상대방에게 지우는 셈이 되는 것이므로, 아무리 말하기 수줍다 해도 어린이라면 모를까 성인이라면 자신과 대화하고자 하는 그를 돕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으면 좋겠다.
평화..
글. 유수정 (본 재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