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비극은 새로운 사랑의 대화를 개발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영화에서 여주인공이 존 웨인에게 “당신에겐 당신 말고는 아무도 필요하지 않군요,”
그는 “난 나를 필요로 하는 여자를 원합니다.”
그가 여자에게 듣고 싶었던 것은 “당신이 필요하다”는 말 뿐.
하지만 여자가 섹시한 드레스를 입고 직진으로 접근하자
“당신이 그걸 입었으니 당신을 체포하겠소.”
여자는 “당신이 그 말을 할 줄 몰랐어요.”라고 대꾸하지요.
“무슨 말?”
“날 사랑한다는 말.”
“난 당신을 체포한다고 했는데.”
“그게 그거죠. 알면서. 말하지 않았을 뿐이잖아요.”
영화에서 사랑은 대화를 통해서가 아니라 서로 눈이 맞아 발견하는 것이고
사실상 추격전과 같다는 것이다.
처음엔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해서 일반화한 표현 아닌가? 생각했다.
첫눈에 반한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소리가 좋아서.. 가 분명 있다.
사람을 보기 전에 전화 목소리를 듣고 와락 호감이 갔다는 둥.
그의 손이 마음에 들어서.. 그에게서 나는 샴푸 내음이..
그의 옆모습 목덜미 선이 예뻐서..그의 노래에.. 그의 그림을 보고..
그가 쓰레기를 챙기는 걸 보고.. 별별 이유가 다 말하자면 ‘첫눈에 반한’ 것인데,
뭔 첫 음성을 따로 아야기하는가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첫 음성‘이란 목소리가 아니라 ’첫 대화‘를 뜻하는 것이리라.
남편은 내가 매우 성숙한 여성인 줄 알았다고.
처음 만나던 날, 아주 단정한 단발에 언니 옷을 입고 나가서였는지.
그리고 까맣게 있고 있다가 6개월인가 후에, 갑자기 느닷없이 우리 집을 찾아 왔을 때 집에서 무방비 상태로 맞이한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아버지 것인지 오빠 것인지 모르지만 남자 Y셔츠를 헐렁하게 걸치고,
청바지 한 쪽만 둥둥 걷어올려진,
완전히 말괄량이 폼새에 가릴 것 없는 철부지였던 모양.
첫인상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마음에 남는 것은 사실 그것이 그렇게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 문제는 눈에 보이는 첫인상은 사실 그리 믿을만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첫 음성‘ 즉 처음 만났을 때 나누었던 첫 대화에서 끌렸다면
그렇게 잘못 보는 확률은 훨씬 낮아질 것이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라고 본다.
그러고 보니 저 그림도 처음과 달리 보인다.
일단 보이기는, 첫 인상은, 나의 이상인 듯 나와 잘 맞을 듯 하지만
깊이 들어가 보면 전혀 결이 다를 수 있다는 것.
그러니 첫인상보다 첫음성을 더 중요시 할 필요가 있겠다.
이미 사귄 후에, 혹은 결혼 후에야 알게 되었다면 사실은 그때부터가 진정 사랑을 시작할 때,
바로 그때부터 진정 ‘대화’를 할 때가 아닐까.
평화..
글. 유수정 (본 재단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