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 서울자유길학교 ‘독립문 코스’ 탐방기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KCEF, 이사장 곽삼근) 장학단체인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원장 정윤재)은 6월 21일 서울 자유길 학교의 ‘독립문 코스 가이던스 시연’을 성황리에 마쳤다.

 

시연을 진행한 백장흠 가이던스는 지난 3월 서울 자유길 학교 1기 가이던스 양성과정(Seoul Freedom Trail School)을 수료하고 독립문 코스를 담당하고 있다.(독립문 코스 담당: 임유나 가이던스, 백장흠 가이던스)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 서울 자유길 학교 가이던스 양성과정은 서울 근현대사 관련 사적지와 문화재, 인물들에 대한 안내해설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학교다.

 

현재 운용 중인 서울 자유길 코스는 독립문 코스, 김형제상회 코스, 태화관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 서대문 독립문역 앞은 독립운동 관련 역사적 현장 트라이앵글 지역으로 불린다. 독립문이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그리고 국립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관으로 역사 현장이 배치되어 있다.

 

21일 트라이앵글 중 하나인, 우리나라 대표적 사적지 독립문이 있는 서대문 독립공원 광장에 대한 탐방을 진행했다.

 

탐방 일정에는 KCEF 곽삼근 이사장을 비롯해 주성민 명예이사장, 한상완 KCEF 제4대 이사장(전 연세대 부총장), 김주선 상임이사 등 13명이 참여했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지하철 3호선 4번 출구로 나오면 바로 민나볼 수 있다. 약 34,000평 정도 규모로 국제규격 축구장 약 15개 정도의 크기다. 1992년 8월 15일 개원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항거하다 옥고를 치렀던 선열들의 자주독립 정신을 후손에게 기억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으며, 2009년 10월 28일 재개장해 현재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독립공원 6개소 역사적 현장 탐방

 

▲코스 1. 독립문

 

서대문 독립공원의 대표적 현장은 바로 자주독립의 상징 ‘독립문’이다. 우리나라가 외세(청나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문이다.

 

약 130년 전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중국의 명나라와 청나라 사신들을 맞이하던 문이 있었으며, 독립문 앞에 있는 바로 이 2개의 기둥이 사신들을 맞이하던 ‘영은문’이 있었던 기둥이다. 그 문을 헐어내고 독립문을 세웠고, 그 기둥만 기념으로 남겨둔 것이다. 기둥의 이름은 영은문 주초이다.

 

독립문은 파리의 개선문을 모티브로 하여 독립협회 주관으로 1897년 건립되었다. 독립문의 원래 위치는 독립문역 사거리에 있었는데, 1979년 성산로 도로공사 때문에 현재 위치로 이동한 것이며, 독립문의 원래 위치를 동판에 새겨 원래의 자리에 묻어놓았다고 전해진다. 네이버 등 지도나 서대문 독립공원 안내도에 ‘독립문의 원래 위치’를 표시해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현재는 안내도 어디에도 이 표시는 없었다.

 

▲코스 2. 송재 서재필 선생상

 

동상의 주인공은 대한민국 최초의 의사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박사다. 미국에서 의학공부를 하고 돌아와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헌신했으며, 독립의 상징인 독립문 건립을 주도하기 위해 독립협회를 창립했다.

 

서재필 박사는 주시경 선생 등과 함께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해 독립사상을 널리 알렸다. 독립신문은 현재 우리가 쓰고있는 한글 띄워쓰기를 처음 적용한 신문이다. 독립신문이 창간된 4월 7일은 현재 신문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코스 3. 독립관

 

독립관은 원래 1407년(태종 7년) 중국 사신을 영접하기 위해 지어진 영빈관으로서 초기의 이름은 모화루였다. 1429년(세종 11년) 확장 개축되면서 모화관이라 개칭되었다. 무악재를 넘어온 명-청나라 사신들이 영은문을 통해 들어오면 이곳 모화관에서 조선의 관리들이 접대를 했던 장소다.

 

19C 말에 이르자 국제관계의 변화로 원래의 목적대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모화관을 서재필 박사가 독립협회를 세우면서 독립관으로 개칭하고, 애국토론회를 개최하여 자주-민권-자강 사상을 고취시키는 독립운동의 기지로 사용됐다.

 

그 후 일제의 탄압으로 독립관은 폐쇄되었으며, 1995년말 1년여의 공사를 거쳐 현재의 위치에 세워졌다. 세워질 당시 위치는 현재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350m 떨어진 곳인 영은문 좌측에 있었으나, 서대문독립공원 조성사업 계획에 의거 전문가의 고증 자문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한식 목조건물로 복원됐다. 1층은 순국선열들의 위패(位牌) 봉안과 전시실로 사용하고, 지하층은 행사 및 유물관리를 위한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코스 4. 3.1독립선언 기념탑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손병희 등 민족대표들은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삼창함으로써 거족적인 3.1독립만세운동의 불을 지폈다.

 

3.1독립선언 기념탑은 이날의 숭고한 자주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1963년 8월 15일 당시 재건국민운동본부 주관으로 온 국민의 성금을 모금하여 3.1독립만세운동의 현장이었던 탑골공원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1979년 탑골공원의 정비사업으로 철거되어 12년간 방치되었다가 각 계 복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1992년 항일 독립운동의 터전인 이 곳 서대문 독립공원으로 옮겨 세우게 되었다.

 

▲코스 5. 3.1운동 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는 1919년 3.1운동 당시 발표된 것으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언서를 통해 우리 민족의 자유와 자결권을 주장했던 선조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五等은 慈에 我朝鮮의 獨立國임과 朝鮮人의 自主民임을 宣言하노라~ 로 시작하는 독립 선언서, 미래세대를 위해서 현재의 선언서에 추가하여 한글로 된 선언서도 있으면 좋지 않을까? 그리고 현재 선언문의 위치를 독립공원 가운데 잘 보이는 곳에 비치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코스 6. 애국열사 유관순 동상

 

독립공원에 있는 가장 인상적인 현장은 바로 우리의 영웅, 유관순 열사의 동상이다. 유관순 열사는 3.1운동 당시 일본 경찰에 맞서 독립을 외쳤던 대표적 여성 독립운동가로 당시 그녀의 나이는 불과 17세였다. 그녀의 용기는 오늘날 모두에게 큰 감동을 준다.

 

‘나라에 바칠 목숨이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만이 유일한 슬픔’이라는 어록처럼 우리 모두 유관순 열사의 숭고한 나라사랑 정신을 본받아야 한다.

 

■가이던스 여정을 마치고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미래를 살아가기 위한 거울이다. 서대문 독립공원은 학생들과 시민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와 중요성을 교육하는 장소로, 활용도가 큰 현장이면서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희생과 투쟁을 기리며, 현재의 자유와 독립이 그들의 노력 덕분임을 상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서대문 독립공원에는 어떤 역사적 현장이 있는지 아시는지요? 서대문 독립공원을 탐방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의외로 많은 분들이 아직 이곳을 찾아와 보지 않으신 거 같습니다. 탐방이 필요하신 분이 계신다면 한국시민리더십학습원으로 연락주시면 됩니다. 어른 세대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독립문역 앞 서대문 독립공원에 자주 방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역사 전문 해설가인 가이던스들이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서울자유길학교 1기 가이던스 백장흠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