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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통일과 이데올로기

      2024년 10월 1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토마스 셰퍼(Thomas Schäfer) 전 북한 주재 독일대사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경제적, 정치적 이유로 통일을 원하고 있으며, 남북한의 생활 수준을 조화시키는 일은 독일보다 훨씬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통일을 위해서 남북한 주민이 무엇을 원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으며 동독에 비해 현재 북한은 훨씬 폐쇄적이면서도 안정적이라고 진단했다. 독일의 통일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진행됐다. 독일의 통일은 국민에 의해 시작되었고 국민에 의해 완성됐다. 구동독의 독재정권은 권력의 유지를 위해 거짓 선전으로 주민을 기만하였지만, 구서독과의 제한적 교류를 통하여 정보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구동독 주민의 해외여행 허용으로 대규모 탈출이 시작됐다. 동독 주민의 대부분이 서독을 방문했고 양쪽 주민 사이에 통일을 향한 공감대가 형성되자 동독 주민의 시위가 확산하고 저항 세력이 조직되었다. 결국 동독 공산당이 해체되었고 동독에서 자유선거가 실시되어 구동독 인민회의 의원을 포함한 전 독일 통일 의회는 독일의 통일을 확정했다.

 

      이러한 독일 통일의 과정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준다. 통일보다 중요한 것은 소통과 신뢰의 구축이다. 통일 이후의 갈등과 후유증을 줄이기 위해서는 지리적, 제도적 결합보다 의식의 일치가 선행되어야 한다. 통일 목표와 과정, 수단에 있어서 국민 사이의 합의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통일은 소통과 합의의 자연스러운 결과이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루어야 하는 목표가 아니다, 북한은 오랜 기간 외부의 변화에서 문화적 사상적으로 고립되어 사고와 의식의 장벽이 크다. 독일에서는 통일되기 3년 전부터 대부분의 동독 주민이 서독을 방문하여 문화적 교류가 진행되었기에 아래로부터의 통일이 실현된 것이다. 우리 사회는 남북 갈등 이전에 남남갈등을 해소되고 통일에 대한 논의가 열매를 맺어야 한다.

 

      지난 9월 라파엘 그로시(Rafael Grossi) 국제 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인정하고 대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과 관련한 세계정세의 흐름이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전환하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요구해 온 ‘핵보유국 인정’이 관철되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지만, 미국도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봉쇄정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에 대한 당근 정책뿐이다.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체재 결속을 위한 두 국가론 주장은 대한민국 헌법 4조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통일의 길을 막고 있다.

 

      그동안 통일은 남북 주민의 합의라기보다 지배 이데올로기의 도구가 되어왔다. 냉전 시대에는 이데올로기가 국가와 국민의 단결을 위한 경제적, 정치적 도구였다. 이제 세계는 탈이데올로기로 나아가는데 우리는 오히려 이데올로기로 회귀하고 있다. 서로 통일을 지향하면서 한반도가 화약고가 되고 있다. 이데올로기는 냉전 시대의 산물이며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무력을 동반한다. 먼저 무력 사용의 배제가 합의되고 평화에서 소통으로 소통에서 화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상처가 치유되어도 흉터는 남는다. 독일의 경우에서처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통합까지에는 최소한 분단의 시간만큼의 기간이 소요될 것이다. 무엇보다 남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통일이 최우선의 과제이다. 그러면 독일의 통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의 통일도 신화처럼 다가올 것이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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