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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순원 칼럼] 가계부채와 부채디플레이션

      좋은 의미에서 부채는 미래의 소득을 근거로 현재의 지출을 늘려서 더 나은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한다. 중요한 것은 부채상환 능력을 의미하는 미래의 소득인데, 부채의 문제는 둘 사이의 역전에서 일어난다. 상환 능력의 저하와 금리의 인상은 위기를 초래한다. 가계부채는 국가의 부채와 달리 자산을 담보로 하거나 개인의 신용으로 발생한다. 가계부채는 개인의 경제적 능력 안에서 실행되지만, 국가의 정책이나 규제로 인해 부채가 늘어나면 개인은 부채의 악순환 고리에 빠진다. 현재 우리나라의 가계부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GDP 대비 100%를 초과하였는데 상환 능력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 가계대출에서 주택담보대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이러한 상황에서 주택가격이 하락하거나 금융기관의 대출 조건이 강화되면 가계의 상환 부담이 급격하게 가중된다.

 

      가계부채는 양날의 검이다. 그것은 원숭이가 호리병 안의 땅콩을 움켜쥐고 손을 빼지 못해 사냥꾼에게 잡히는 형국과 같다. 한국은행은 2017년 가계부채와 경제성장과의 관계를 분석하는 보고서에서 처음에는 가계부채가 소비와 경제성장률을 증가시키지만, 결과적으로 둘을 억제한다고 발표하였다. 가계부채는 신용카드처럼 단기적으로 총소비를 늘려 경기를 부양한다. 총소비의 증가는 투자 증가를 통해 국내총생산을 증가시키고, 가계와 자영업자들의 일시적인 유동성 악화를 방지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가계부채가 늘어날수록 원금과 이자 상환의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가 감소하고 국내총생산은 하락하고 경기침체와 양극화가 심화한다. 또한 주택담보부채를 통한 주거비 부담은 비혼과 저출산의 나비효과를 일으킨다.

 

      가계부채가 디플레이션과 만나면, 자산가치는 떨어지고 부채의 실물 가치가 증가하며 실질금리가 상승한다. 그 결과로 투자와 고용은 감소하고 소비의 감소로 기업의 수익성 감소와 경기침체가 지속된다. 경기침체는 실업률을 증가시켜서 가계 부담 증가의 악순환을 지속한다. 가정경제의 붕괴는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국가 경제의 몰락을 초래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처럼 금리인하와 부동산 대출 규제 완화는 부동산 가격의 폭등을 불러오고, 이후의 금리 인상은 장기 디플레이션을 고착시킨다. 따라서 부채에 있어서 정부와 가계의 역할 분담이 잘 이루어져야 국가 경제가 안정될 수 있다. 경기침체로 인한 세금 수입의 감소와 사회안전망과 초고령사회를 위한 재정지출 증가로 정부부채는 앞으로도 계속 늘어나겠지만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비율은 OECD 국가 채무 비율의 절반 수준이다. 더 시급한 가계부채의 경감을 위해서 교육, 의료, 주거 등에 대한 공공성을 확대해야 한다.

 

      부동산에서 시작한 가계부채와 금융시스템 붕괴에 의한 글로벌 금융위기는 민간 부문의 부채가 정부부채로 이전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였다. 부실 금융기관 처리를 위한 공적자금 조성과 재정지출의 확대가 가계부채와 국가 부채로 확대되는 통로가 된다. 한편, 복지와 공공정책의 비용이 과도하게 국민에게 부과되어 국가 부채가 다시 가계부채로 전이되는 악순환이 지속하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 우리나라의 국가 부채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이유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국가 부채가 가계부채로 전이되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가계부채는 소비 촉진 등을 통해 경기를 회복시키기도 하지만 소비와 경제성장에 부담을 주며 나아가 금융시스템의 취약성을 높일 수도 있다. 따라서 부채의 긍정적 효과를 증대시키고 부정적 효과를 감소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리츠 제도는 주택의 매입과 임차에서 필요한 자금의 상당 부분을 부채가 아닌 민간 자본으로 대체하는 방안이다. 리츠에 일정 지분 이상 투자한 가구는 대출에 의존하지 않고 리츠 운영사가 보유한 주택에 거주할 권리를 갖게 된다. 이것은 가계와 금융기관에 집중된 가격변동의 위험을 다수의 민간투자자에게 분산하여 부동산 시장의 건전성을 도모할 수 있다.

 

홍순원 논설위원·(사)한국인문학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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