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3차원적 시간과 공간 안에 존재하기에 우리의 사고와 경험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 이루어지며 인과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만물의 근원을 탐구하였던 헬레니즘의 자연철학 이후로 인과론은 인간의 사고와 역사를 지배해왔다. 우리는 사고와 경험을 통하여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 철학과 과학은 인과성과 법칙성을 기초로 발전하였으며 인과법칙에 근거하여 과학의 발전과 문명의 진보가 이루어졌다. 그동안 과학적 사고는 두 사건이 원인과 결과로 연결되는 상황을 하나의 인과관계로 확정하고, 그 관계에서 원인 사건은 결과 사건보다 시간에 있어서 앞선다고 전제하였다. 말하자면 어떤 물체가 움직인다면 그것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먼저 존재하며 작용하는 것이다. 진화론과 빅뱅 이론도 인과론의 대표적 유형들이다. 고전 물리학의 인과론은 결정론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든 물리적 사건이 이전 상태에 의해 정확히 결정된다고 보는 관점이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알면 미래의 예측이 가능하며 시간과 공간은 예측이 가능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우리의 현실과 우주 질서에는 인과성을 넘어서는 우연성이 존재한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우주의 현상이 인과법칙에 근거하여 나타난다고 보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들이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빛이 입자성과 파동성을 동시에 가진다는 사실은 인과적 사고의 한계를 드러낸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시간을 절대적이고 직선적인 흐름으로 보았으며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현상처럼, 모든 사건은 시간의 일방적 흐름 속에서 인과관계로 설명된다. 한편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통해서 중력과 속도에 의해서 시간이 변화하는 사실을 밝힘으로써 고전 물리학의 한계를 지적하였다.
모더니즘을 지배하던 합리성과 인과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은 심리학에서 무의식의 발견을 통하여, 과학에서 양자물리학을 통하여 무너졌다. 프로이트(Freud)는 이성이 속해 있는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 인간을 지배한다고 강조하였다. 그에 따르면, 의식 세계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 있지만 무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작용한다. 프로이트의 제자인 칼 융(Carl Jung)은 ‘동시성’(synchronity) 이론을 통하여 의식과 무의식의 연관성을 주장하였다. 동시성 이론은 의식적인 인과관계와는 별개로 의미 있는 사건들이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이다. 융에 따르면 동시성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무의식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 의식과 연결되는 현상이다. 꿈에서 경험한 내용이 현실에서 그대로 일어나는 것은 동시성의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동시성은 경험과 무경험, 의식과 무의식, 과거와 미래가 연결하며 세 가지 형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경험자의 내면적 상태와 경험하는 외부 사건의 우연적 일치로 나타나며 경험자의 내면적 상태가 경험하지 못하는 공간적 거리에서 일어나는 사건과의 우연적 일치로도 나타나며 경험자의 내면적 경험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의 사건과의 일치로도 나타난다. 융은 동시성이 우연이 아니라 우주의 질서를 반영한다고 보았다. 그는 우주 질서 안에는 인과성을 벗어나는 현상이 일어나기에 인과론적 분석만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하였다.
자연 세계에서 동시성을 관찰하는 것이 양자물리학이다. 양자물리학에서 양자 얽힘은 한 번 연결된 양자들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동시에 상호작용하는 현상이며 동시성의 사례가 된다. 확정적인 인과론이 거시적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입자처럼 확률이 지배하는 미시현상에는 적용되기가 어렵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시간과 공간의 한계 안에서의 우리에게 경험되는 인과성은 추리로 끝날 수도 있다. 양자의 세계에서는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명제에서처럼 명문화된 진리는 진리가 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과학은 존재의 전부를 드러내지 못하며 과학만으로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인과성이 역사와 문명을 발전시켰지만, 우리는 그것에 머무르면 안된다. 양자물리학과 생성형 인공지능의 시대는 인과법칙에 기초한 우리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