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시키는 부모’가 아니라 ‘공부를 도와주는 부모’ 중요…좋은 대학, 일류회사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체(몸튼튼), 인(마음튼튼), 지(공부튼튼)의 밸런스 중요…부모가 자녀와 함께 나아가는 길 방향점 제시
자녀는 결국 부모와 별개의 존재이고, 자신의 길로 훨훨 날아가야…자녀의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의 독립
‘시니어배움터락(樂)’은 지역사회교육운동 정신을 바탕으로, 시니어들이 행복한 삶을 살다가 아름답게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만남, 배움, 나눔을 지향하며, 지혜롭고 통합된 노년의 삶을 살 수 있게 서로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지난해 12월 12일 KCEF타워 커뮤니티홀에서 ‘이소성대(以小成大)’ 소망을 담아 창립총회를 갖고, 초고령사회의 시대적 상황과 지역사회교육운동의 평생교육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비전을 밝히며 시작된 비영리 시니어법인단체다.
30여 명의 시니어체인지 강사들이 부모와 아이까지 3세대를 대상으로 강의 등을 진행한다.
정명애 대표는 1950년생으로 70대 중반이지만 누구보다 왕성하게 단체를 이끌며 활동하고 있다. 시니어 단체로는 드물게 지자체의 양성평등 공모사업을 수주해 성공리에 마무리했으며, 시니어들의 디지털 문해력을 돕는 프로그램 등 ‘시니어 체인지’에 열성을 다하고 있다.
다음은 “자식에 짐 되지 않고, 이 일을 오랫동안 하고 싶다”는 정명애 대표의 인생 2막을 사는 즐거움과 시니어 체인지 프로그램에 대한 <브릿지경제 조진래 기자>의 인터뷰 내용이다.
▲‘시니어배움터락’은 어떤 단체인가.
“평생교육을 실천하는 시니어단체입니다. 시니어 대상 강의도 하지만 그보다는 삶과 지식의 노하우를 함께 나누며 즐겁고 성숙하게 늙어가고 싶어하는 시니어들의 모임이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웃음). 최근에는 서초구가 발주한 양성평등 의식강화 교육 공모에 선정되어 성공리에 마무리하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에게 집에서 쓰는 차별적 언어와 평등 언어를 전하고, 양성평등 풀뿌리축제에서 체험 부스를 운영해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시니어단체가 지자체 사업에 참여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크다고 봅니다”
▲시니어 체인지 프로그램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25명의 시니어체인지 강사가 각자 3개씩 모두 75개 프로그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외부 강의 요청이 오면 주제에 맞게 강사를 선정합니다. 예를 들어 ‘약이 되는 밥상’ 강의는 어르신이 드시는 영양제를 여쭈어 보고 건강 음식을 소개드립니다. 구례와 곡성, 순창, 담양 등 장수마을의 ‘구곡순담 밥상’이나 지중해식 식단 등을 소개하는 식입니다. 스트레칭 몸짱 만들기, 소근육 일깨우는 놀이, 치매예방 신체놀이, 마음챙김, 인지놀이, 치매예방, 이름다움 삶의 마무리 등 다양하고 실질적인 강의들이 많습니다”
▲어떤 계기로 부모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재 어떤 활동에 집중하고 있는지.
“서울교대를 나와 교사로 10년 재직하고 퇴직했어요. 큰아들이 유치원에 들어갈 때, 두 아들을 잘 키우겠다고 다짐하면서 용감하게 사표를 던졌어요. 그런데 사춘기 때 절벽 앞에서 길을 잃었어요. ‘나름 열심히 키운다고 했는데… 연금 포기 대가가 겨우 이것인가,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부모 노릇이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들이 저를 이 길로 이끌었습니다. 특히 연금보다 더 소중한 ‘지역사회학교 운동’을 만난 것이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어요. 좋은 부모가 되고 싶어 공부를 시작했고, 변화하고 싶어 강사과정까지 공부해 ‘부모교육강사’가 되었습니다”
▲50대에 서울디지털대학에서 상담심리학, 가톨릭대학에서 생명문화학을 전공했다. 뒤늦게 이런 선택을 한 이유는.
“어린 시절에 묶여있는 부모, 자신의 내면 문제로 괴로운 부모, 그런 부모와 살면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자녀들을 보면서 교육의 한계를 느꼈어요. 심리상담을 공부하고 모래놀이치료사로 활동했고, 상담분야에서 계속 일을 하려면 대학원을 가야 했지요. 하지만 문제가 생긴 후에 심리치료 하는 것보다, 예방적 차원에서의 교육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어요. 부모들이 자녀를 귀한 생명의 존재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고 싶어서 생명문화학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부모 교육에 매진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지. 반대로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이 있다면 무엇인지.
“부모교육을 통해 단순히 자녀를 잘 키우려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자신이 성숙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만날 때 참 좋았어요. 가치관과 관점이 변해가는 부모들의 모습을 볼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좋은 부모가 되는 것을 막는 걸림돌은 두 가지라고 생각해요. 경쟁과 사교육에 함몰되어 부모들이 자신의 노후자금을 쏟아 붓는 것, 그리고 부모 자신이 어려서 충분히 사랑받지 못했기에 자녀를 사랑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3시간씩 5회차로 부모를 위한 자기주도학습 프로그램을 진행해, 부모가 스스로 깨우치도록 돕습니다. 정말로 아이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이는 자존감과 성취동기가 없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공부시키는 부모’가 아니라 ‘공부를 도와주는 부모’가 되라고 강조하는데.
“학습의 본질은 ‘자기주도’ 학습입니다. 부모가 나서서 사교육으로 자녀의 학습을 끌고 간다면 자녀는 배움의 환희를 맛보기 어려워요. 인간 수명은 길어지고 정보 수명은 짧아진 시대에서 스스로 공부하는 힘은 생존의 필수 조건입니다. 부모들이 좋은 대학, 일류 회사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학과 공부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배울 때 성취감을 느끼는 체험이 많아지면 자기주도학습의 뿌리가 자라날 수 있어요. 당장의 꽃과 열매보다 보이지 않는 뿌리를 중요하게 여겨야 합니다.”
▲부모들은 어떤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까.
“운전을 하려면 공부를 해서 필기와 실기를 통과해야 운전면허증을 따야지요? 대학에 들어가려면 오랜 시간의 배움과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녀라는 귀한 존재를 키워내는 것은 숭고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배움이 없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면허 없이 취한 상태로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부모역할에 대해 잘 모른다. 어떻게든 배워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이 준비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철학으로 ‘체.인.지’ 이론이 유명하다.
“교육법 2조에는 ‘홍익인간’이라는 이념이 나옵니다. 자주적 생활능력, 민주시민, 인간다운 삶, 국가발전과 인류공영에 이바지, 이런 단어들을 부모님들께 어떻게 소개할까 고민했습니다. ‘공부보다 인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우리나라 부모님들에게는 설득력을 잃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체(몸튼튼), 인(마음튼튼), 지(공부튼튼)의 밸런스가 중요함을 이야기하게 되었어요. 어두운 밤바다의 등대처럼, 사막의 나침반처럼, 부모가 자녀와 함께 나아가는 길에 방향점을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강의나 상담 사례가 있다면.
“강의를 나갔는데 여든이 넘어보이는 분이 ‘아플 때 곧바로 죽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는 거예요. 남편을 여의고 아이들과도 단절되어 혼자 사시는 분이었어요. ‘그런 방법은 없어요. 열심히 배우고 건강 잘 챙기면 나아질 거예요’라고 밖에 말씀 못 드렸지만, 다른 분들과 어울려 미술활동 등을 하면서 나중에는 ‘이렇게 죽기 전에 재미난 일을 하게 되어 행복하다’고 하시더군요. 의미 있게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게 해 드린 것 같아 다행스러웠습니다”
▲은퇴를 전후로 의미 있는 인생 2막을 희망하는 시니어들에게 값진 조언 부탁.
“부모 역할의 마지막 과제는 자녀를 떠나보내는 것입니다. 자녀는 결국 부모와 별개의 존재이고, 자신의 길로 훨훨 날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자녀의 독립보다 더 중요한 것이 부모의 독립입니다.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 자기가 살고 싶었던 삶을 살 수 있는 황금 시간에 진입한 시니어들에게도 체.인.지가 중요합니다. 죽을 때까지 두 발로 걸을 수 있도록 ‘몸튼튼’에 노력해야 하고, 치매에 걸려 자녀에게 부담되지 않도록 ‘머리튼튼’에 집중해야 합니다. 지난 삶의 시간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여생을 즐겁게 지내기 위해 ‘마음튼튼’이 꼭 필요합니다. 아무 준비없이 ‘당하는 죽음’이 아니라 삶의 마무리를 잘해서 홀가분하게 떠나는 ‘맞이하는 죽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한국지역사회교육재단의 지원을 받고 있다. 어떻게 인연을 맺었는지.
“재단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님의 지역사회교육운동으로 시작된 것으로 압니다. 저도 이곳에서 평생교육 과정을 공부했습니다. 시니어배움터락도 재단 주관 하에 학부모의 리더십 함양 교육을 진행하다가 발전해 모임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재단이 평생교육 장학사업으로 장학금을 지원해 준 덕분에 75개의 시니어 체인지 프로그램도 만들어 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원종성 편집국장